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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몽유도원도는 침탈문화재인가?

몽유도원도의 시간들....

 

우리투데이 차한지 기자 | 몽유도원도1447년 4월20일 언평대군이 무릉도원의 꿈을 꾸고 안견에게 그리도록하여 3일만에 완성된것이다. 

1979년 박동 문화재 민간 환수 위원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삶의 일부다.고 하였다. 79년 한국의 美 전집을 구매하며 8도 인쇄작품 몽유도원도를 접하였다.

그는 고려불화 편을 감상하며 받은 감동은 오히려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고려불화에서 품위한 당당함, 섬세함, 고귀한 화력, 넘볼수 없는 디테일과 장엄성에 압도된 것이다.

한편으론 특별히, 최대로 크게 수록된 몽유도원도는 분첩되듯이 두루마리처럼 펼친 작품이였다.

흠뻑 감동을 공유하던 그때, 소장자 란에 일본소장으로 나열된 페이지를 확인 하면서 고려불화, 몽유도원도가 일본소장임을 알게된다.

 

그때는 20대의 어린 청년에 지나지 않았고, 북한산성 복원운동 90년도, 인사동 차없는 거리 운동에 투신한 문화에 맛을 들이는 청년이었기에 30代 중반에서야 슬금슬금 <반환>이라는 명제를 사명으로 맞이하게 된다.

고려불화와 몽유도원도 반환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97년 세계문화유산에는 고 김동길 라디오쑈에 참여하며 열띤 논쟁을 벌이게 된다.

어찌 되었든 청년에서 장년으로, 어른이 되어가며 자연스럽게 늘 몽유도원도에 스민 경외적 예술세계에 천착된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큰 변화가 내 스스로에서 빚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반환>과 <복원정신>에 대한 함의다.

물론 침탈문화재를 환수 보존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일지라도 오히려 몽유도원도의 예술철학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복원정신과 새로운 몽유도원도의 요구다.

나 스스로 아티스트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 아닌 고유의 예술정신을 계승하는 방향성에 대한 칭찬이자 자기 성숙이었다.

 

그럼에도 기웃거리던 몽유도원도 길에 종로구가 주차장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곳은 주차장이 아닌, 몽유도원도와 안평의 정신을 기리는 기자회견을 하게된다.

고 김익홍 교수와 늘 덕담을 나누던 장소였기에 몽유도원도의 실경이 부암동 골목임을 알고 있었기에 제안 할수 있었다.

 

몽유도원도를 감상하다 보면, 왼쪽 진형이 이곳이자 현실세계다 종로의 명소였던 오지암 한옥이 이곳으로 옮겨저 문화사랑방으로 사랑을 받게 된다.

끊겼던 나의 편력은, 어느덧 장년은 지나 노년기를 맞이하는 그루터기쯤에서 사유하는 마음자락이다.

 

79년 한국의 미(美)에서 만난 감동과 97년 세계문화유산의 해에 고려불화, 몽유도원도 반환대책본부 그리고 몽유도원도 길 제안에 이르도록 <환수와 복원정신>의 길위에서 어느덧 분명한 갈레를 연결한다.

문화유산의 철학과 문화유산이 골동품으로 그리고 소유논쟁으로 확장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사유다.

오히려 맹독을 지닌 독사의 본능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용에 그치지 않고 공격용으로서의 남용은 오히려 스스로의 맹독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문화유산의 덫은 우상처럼 뜬 구름일 뿐이다.

예컨대 명품 고려청자의 가격이 높다면 높은것이지 고려청자의 빛과 얼결 숨쉬는 예술혼의 만남은 소유를 훌쩍 뛰어 넘는 존재라는 성취다.

 

소유와 존재의 간극을 뛰어넘을수 있는 우리모두의 성찰지대를 요구하게 되었다.

요즘 간간히 몽유도원도 환수 담론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한. 일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몽유도원도 특별전을 2025년에 일본대사에게 사려깊게 제안하는 기사다.

분명 좋은 제안이자 순기능적, 시대 이벤트로 자리매김 될 것은 자명하다.

가깝고도 먼나라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 일본과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특별한 몽유도원도 전시가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식민지, 6.25분단, 근. 현대화의 성공과 좌절, 부침과 영광, 한강의 기적과 치유의 과제 21C 초격차 고도화 산업의 각 명제속에 꿈틀거리는 우리의 비전은 무엇일까?

문화정책개발 시대요, 성찰의 명백함이다.

이른바 문화공학의 전문화와 함의 시대다.

 

이를테면 K-한류은 현상 이거나 시대의 명제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 아닌 한류철학, 한류문명의 깊고, 넓고, 섬세한 디자인을 공유한다.

경제개발정책의 시대, 사회개발정책의 시대, 정보화, 세계화정책의 시대의 종착점이자, 시작점은 문화정책개발 시대이자, 그 세력의 시대다.

이른바 사회과학, 인문과학 그리고 문화과학의 공학적 사유를 제안한다.

 

79년 한국의 미(美) 97년 고려불화 몽유도원도 반환대책 본부 2,000년 몽유도원도 길 제안, 어찌 보면 40여년의 몽매한 <화두>속에 어느덧 소유와 존재에 대한 나의 걸망을 벗으며 몽유도원도의 환수는 오히려 축제의 환희심처럼 대한민국과 일본 고유의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에 대한 배려와 용서 존경과 풍요로움으로 빛날 NFT프로그램을 꿈꿔본다.

 

유네스코 헌장을 훌쩍 뛰어넘는 <철학적 고찰과 공영의 프로그램>이다.

늘 그렇듯이 오히려 소유의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그 수줍음만 남고,

초례청에서 맞절하듯이

이웃 일본과 함께 말이다.

 

40여년의 여정을 ----------(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