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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터뷰] 주현교부 이교부씨를 만나다

 

전북 익산시 주현동 174-4에 위치해 있는 '주현교부'를 2025년 11월 9일 방문해 이교부씨를 만났다. 매주 일요일마다 모임을 갖는줄 알았던 본지 기자는 이날 한달에 한번, 첫번째 일요일에만 모인다는 얘기를 듣고 발길을 돌리려다가 이교부씨를 만나고 가려고 면담신청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4층에 있는 이교부씨 방에서 독대를 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인터뷰는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편집자주>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Q, 간략한 본인 소개를 하신다면?

A. 저는 1940년 음력 4월 28일생으로 전북 익산시 왕궁면 흥암리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농부였습니다. 저는 어려서 어머님의 젖이 부족하여 다른 분의 젖을 얻어먹고 암죽으로 자라난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정 말기에 기억나는 것은, 왕궁 초등학교 창시자의 기념동상이 동(銅)이라고 떼어 갔으며 집집마다 구리, 놋쇠 그릇, 수저까지도 거두어가고 공출로 거두기 위해 일본 순사들이 칼을 차고 면서기들과 가택 수색하여 벼가 있으면 빼앗아 가는 것을 뒤따라 다니며 구경을 했고 저의 집에도 신을 신고 들어와 수색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당시 맏형은 일본 순사가 한국 노인을 잡아다 때리며 조사하는 것을 보고 분히 여겨 “너희들은 부모도 없느냐?”며 일본 순사를 때린 동기로 폭도가 되어 은둔 생활을 하던 중 8.15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온통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고, 맏형은 일장기와 일본 책들을 모아 불을 지르곤 했습니다. 그 후 다시 불행한 일은, 왜정시대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 민족을 탄압하고 소실까지 두고 호의호식하던 친일파였던 분이 다시 국가 기관에서 세력을 누리는 것을 보고 불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좌익이라고 때리며 가두는 것을 본 맏형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분히 여겨 그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투쟁하다가 폭도 또는 좌익, 공산당으로 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님은 형님을 안쳐놓고 방바닥을 치고 가슴을 치시면서 “왜인들과도 그러더니 또 다시 그러느냐?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느냐? 벙어리 되고 병신 되어야 산다.”고 하셨으나 맏형은 불응하면서 “아들 하나 없는 폭 잡으시오. 그들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너만 죽느냐? 네 부모, 동생들도 죽게 되는 것이다.”고 한탄하셨습니다.
맏형은 초등학교 다니는 저에게 말 타기를 가르치고 겨울에 옷을 벗겨 맨발로 달리기를 시키면서 “우리나라가 독립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던 친일파들이 다시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선량한 백성들을 탄압한다.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둘째 형은 부모님께 효도했으며, 내성적이라 동네 사람들이 “새색시”라고 놀려 주기도 했습니다. 맏형은 둘째 형에게 말하기를 “너는 선하고 용하다. 땅이나 파고 살다가 죽어라”고 했습니다. 또한 저에게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3.8선이 통일되고 자유와 평등, 권리를 찾아야 한다.”
고 그 당시로는 터무니 없는 교육을 시켰던 것입니다. 저희 집은 밤낮으로 경찰들이 포위 상태에 있었으나 맏형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자유자재로 말을 타고 왕래하던 중 결국 이리 경찰서에서 동원된 분들에게 검거되어 구속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교부야 울지 말아라.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라, 곧 돌아오겠다.”며 떠나셨습니다. 부모님은 “호랑이 입 같은 세상에 네가 무슨 힘으로 싸운다고... 바보 같은 자식”이라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이리 경찰서에서 얼마 후에 군산 법원으로 넘어갔다고 하였는데 희생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길이 없었으며 시신도 인수 받지 못한 참혹한 비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저의 집에 찾아와 말하기를 “훌륭한 사람이 죽었다” 또는 “홍길동 같은 사람이니 총을 쏘아도 죽지 않고 살 사람이다”라고 갖은 말로 위로를 했으나 결국 27세 경에 사라졌습니다.
그 후 6.25 사변이 터져 아군들이 후퇴하고 인민군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죽은 시신을 보게 된 것은 아군과 경찰들이 후퇴하면서 보도연맹 가담자들이라 하여 잡아다 죽여 암매장 한 것을 발굴해 놓은 토막 난 시신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사촌형도 있었습니다.
공산 치하 때도 역시 원수를 갚기 위해 민주인사였던 사람들을 잡아다 때리고 죽였으며 다시 민주사회로 회복되고 보니 역시 공산 치하에 부역한자들을 잡아다 죽이는 비극들이 겹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작은 형은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하면서 피신하지 않고 집에 있다가 지서에서 사람이 와서 “물어 볼 말이 있다”고 하여 자기 발로 걸어갔으나 이리 경찰서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얼마 있다가 군산법원에 넘겼다고 하여 군산에 가 보았으나 넘어오지 않았다고 했으며 수차 확인했으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역시 맏형과 같이 희생시키고 시신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의 집은 왕궁 지서에서 제일 가까운 담 밑에 있었기에 왜정 때, 해방 후 그리고 6.25동란으로 서로 잡아다 때리고 고문하는 비명 소리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듣지 않을까 부모님은 이불이나 요를 가지고 창문을 가리며 살아온 것을 보고 자란 저로써는 “어른들이 왜 싸우고 죽이는가?” 어느 누구를 미워하기보다 사회가 싫어지고 증오감이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선하신 분들이었습니다. 형 둘이 희생되었어도 조금도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시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자식 하나 잘못 두어서 좋은 자식까지 죽고 집안이 망하게되었다.”고만 한탄하셨습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지서 마당 뿐 아니라 순경들의 관사까지도 모두 눈을 치워 주시고, 저의 집이 초등학교 바로 옆이라 점심시간이 되시면 친구들을 데려오라고 하시어 밥도 주시고 물도 끓여 주셨으며 부모 없는 고아 몇 사람을 길러 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은 “착한 사람이 되어라. 맏형같이 잘난 체나 똑똑한 체 말아라. 가난하여 돈이나 양식을 빌려가서 못 갚으면 안 준다고 싸우지 말아라. 그 사람이 양식보다 돈 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말로라도 고맙다고 할 것이며 마음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인심을 잃지 말고 살아라. 그것이 명예나 돈보다 낫다.”고 가르쳐 주셨으며 웃음 한 번 짓지 못하고 사셨습니다.
이런 불행한 저의 가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은 저의 집을 마치 좌익, 공산당이라고 할 수 있고 지금도 저를 사상범으로 오해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형제도 사촌도 없으며 독신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참한 환경이었으며 부모님은 늙으셨고 저는 어렸으나 농번기가 되면 여러 사람들이 저의 집부터 모를 심어 주시고 난 후 자기 집안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외롭거나 고독하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형님들이 그렇게 잘못만은 하지 않고 사셨던 은덕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이것이 저의 소년기 성장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Q, 종교를 갖게 된 동기와 종교생활에 대해 한말씀?

A. 저는 어려서부터 좋지 않은 험한 환경을 보면서 자라다 보니 이 나라가 두렵고 싫어지면서 어린 생각에도 “싸움과 전쟁, 살인하지 않고 부자나 가난한 자나 평등하며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나라가 어디 없을까?” 하였고 때로는 꿈속에서라도 찾아보려고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나팔 불고 북치며 외치기를 “하나님 믿으시오.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사람이 죽고 전쟁이 나는 것도 하나님의 조화다. 교회 나와 예수 믿으면 죽지 않고 부자 되고 병 낫고 천당 간다.”고 했습니다.
어린 저는 “하나님은 못할 것이 없다.”기에 그 하나님을 믿고 만나서 나의 소원을 이루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나고 소원대로 됩니까?” 물어 보니까 대답하기를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경 읽고 그대로 살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무엇이든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세상에서 공부하고 출세하고 돈 버는 것보다 하나님만 믿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교회만 다니고 성경만 보고 기도만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같이 무슨 출세하고 부자 되고 병 낫고 죽어서 천당가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을 만나서 “왜 전쟁과 살인과 가난이 있으며 어떻게 해야만 좋은 세상이 될까?”하는 것을 해결하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제 나이 12세였습니다. 신약 성경을 모두 읽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죽어서 이 세상을 구원했다.”고 하기에, 만일 “또 다시 누가 죽어서 이 세상이 구원된다면 그 때는 내가 죽겠다.”고 각오했으며 하나님을 만나 보려고 시간 있는 대로 밤낮 가리지 않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밤이면 가마니를 가지고 뒷동산 공동묘지에 가서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아버지는 “너는 호랑이도 도깨비도 무섭지 않느냐? 너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핀잔을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까지도 “너는 똑똑하니 공부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격려해 주셨으나 저의 귀에 들릴 까닭이 없었습니다. 학교 공부하는 것은 마치 죄나 되는 것처럼 생각되어 잡지나 만화책, 신문도 보지 않고 노래, 라디오까지도 듣지 않을 정도로 맹신자가 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행여나 세상에 물들고 오염되면 하나님이 제 소원을 듣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제물이 되지 못할까 하여 그저 교회만 열중하기로 했습니다.
왕궁 고등공민학교를 형식적으로 다니며 졸업하고, 익산으로 이사를 하여 상업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하나님을 좀 더 바로 믿기 위하여 중퇴하고 전주 성경 학교에 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고등학교 선생님과 형님 친구분들이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교회는 그만두고 공부하라.”고 했으며 “돈이 없으면 대학교까지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를 넘어지게 유혹하는 사탄으로 생각했으며 “필요 없습니다. 저와 상관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니까 고집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저의 집과 형님을 잘 아시는 분들 중에 저를 불러 심중하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맏형은 독립 투사였다. 너무 잘 나고 똑똑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불의를 보지 못하고 담력이 얼마나 컸는지 일제시대에 가짜 헌병 계급을 달고 말을 타고 칼을 차고 부대에 들어가 물건을 실어내 오기도 했으며 지서에 들어가, 구금되어 있는 사람까지도 탈출시켰다.”고 했습니다. “정부 위정자들이 집권하려고 공산주의, 좌익으로 몰아서 죽였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둘째 형도 맏형 때문에 죽었다.”며 은근히 저보고 “네가 성공하여 너의 형을 위하여 정의로 싸워 원수를 갚아라. 그리해야 형의 영혼도 한이 풀어질 것이다.”라고 충동질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 믿는 일 외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유혹으로만 생각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양심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원수가 있을 수 없고 형님만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원수가 있다 해도 사랑해야 할 것이요, 이유와 까닭 없이 원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때문이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면 피차 잘 잘못이 없게 되는 것이며 누구 하나라도 희생되고 나면 끝이 나지만 원수를 갚으면 끝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신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허물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거지를 보면 데려다 밥을 먹이고 옷을 벗어 주기도 해 가면서 밤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가서 등을 땅에 대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예수님과 부처님보다 더욱 신과 접해 보려고, 종교 의식을 일점이라도 어기지 않고 모두 실행하려고 목사님들이 가르치는 대로 모두 하였습니다.
그처럼 광신자가 되고 보니 성경학교에 가서도 배워 얻는 것 보다 학생들의 비리만 보고 목사들의 성경 가르침과 해석 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에 거부감이 들어, 토론과 변론만 제기할 따름이요 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성경 학교를 그만두고 “제가 직접 신과 접해야 되겠구나”하고 홀로 성경을 보고 기도하여 깨닫고 그대로 살면서 지상천국을 이루어 보겠다고 17세 때 익산시 삼기면에 처음 단독으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예수교 장로회에 속했다가 좀 더 바로 믿어 보려 고 왜정 당시 신사 참배에 굴하지 않았던 고려파 교단에 속했고 성결교회 이성봉 목사, 감리 교회 박재봉 목사, 서울 아현교회 김현봉 목사님의 신앙을 존경하면서 믿음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된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과 독특한 믿음과 행함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목사들과 다르게 사례금을 받지 않고 제 손으로 수고하고 일하며 병들고 가난한 자, 전과자, 소외된 자들을 찾아다니며 돕고 위로하고 그들과 같이 살기 위하여, 돈을 절약하려고 머리를 삭발하고 작업복과 무명옷을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었으며 고기를 먹지 않고 보리밥과 채소를 먹었습니다.
60년대만 해도 굶주리고 헐벗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조금이라도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 금욕주의로, 어느 의식으로 한 것도 아니요 채소와 보리가 몸에 좋아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의 검소하고 실천하는 생활을 보고 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전국 각 지방에 강사로 초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홀로 살기로 한 것은 하나님께 제물이 되고, 어려운 사람들과 사는데 방해가 되면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부친은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님과 둘이 살았는데 어머님 역시도 “네가 큰 일을 하고 뜻을 이루려고 하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 늙은 어머니 생각해서는 결혼하지 말아라. 온 세상 사람을 모두 부모형제 삼고 살아라.”하고 저에게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전국 곳곳에 쉴 새 없이 집회를 하고 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몰려 왔으며 “교부씨야 말로 옳은 종교 지도자요 선지자며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 것 같다.”고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간호원 생활을 하면서도 결혼도 하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살겠다고 결심한 처녀가 저의 집회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 저를 따라 봉사하고 남을 위해 살겠다며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저 역시 그런 뜻이 있다면 저 혼자 하는 것보다 좋을 것 같고 간호원이니 병든 자를 치료해 주고 돌보아주는데 유익할 것 같아 우리는 만인의 공인이 되기 위해 살며 자식도 낳지 않고 살기로 약속하고 26세에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가난한 농촌이 잘 살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부화기를 만들어 병아리를 부화하여 나누어 주고 특수원 예작물을 권장하고 젖염소와 꿀벌을 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분양하여 주고 건축일도 가르쳐 주며 “무엇이든 열심히 땀 흘려 일을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육신과 마음이 병든다.”고 가르치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솔선수범하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했습니다.
저를 아는 종교 지도자들이 처음에는 “동양에 별이 나타났다.”느니 “하늘이 보낸 자”라고 칭송을 하시더니 제가 점점, 종교에서 말하는 일들이 사실과 다른 것과 이면의 비리를 알게 되어 지적하며 말하기 시작하니까 잘못을 고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경계하시고 “이단자다” “자기들을 추종하지 않는다.”고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는 불행하게도 가르침을 받을 선생도, 인도자도 없는 스스로 “자칭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 각 종교 지도자들이 모두 배척해도 하늘이 알 것이요 이 땅에 만인들이 알게 될 것이라는 자신을 가지고 굽히지 않고 독자적으로 신앙을 가지기로 결심했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 후 박정희 대통령 당시 저의 맏형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익산군청 차에 죽었습니다. 운전수는 무면허 자로 임시 직원이었습니다. 사건 담당 경찰관이 “소송하면 관공서에서 무면허 자를 채용한 것부터 잘못일 것입니다. 그러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질서를 지켜야하거나 국가를 헐뜯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보상받으면 무엇하겠습니까 “나라가 잘 되는 것이 보상”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운명으로 죽었는데 어찌 돈으로 보상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종교인이 조금이라도 물의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대로 끝을 내기로 했던 것입니다. 저를 추종하고 따르는 자들에게도 저와 같은 신앙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여러 목사 가운데는 “보상을 청구하여 그 돈으로 교회를 세우자는 이도 있었습니다. 보상받아 교회를 아무리 세운들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조용히 끝내는 것이 바로 교회를 세운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속에 있는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돈이나 교회 큰건물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도들에게는 “교회에 헌금을 내는 것보다 국가에 세금을 더 잘 내라.”고 했으며 “집 있는 자는 팔아서 셋방을 살면서라도 집 없는 자에게 월세라도 얻어 주고 고아,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일손 없는 노약자 집에 가서 노임도 받지 말고 일을 해주십시오, 그 분들도 부모 형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 로 섬기십시오, 그러면 그 분들도 우리를 사랑하고 하나님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죽어서 천당보다 살아서 천국을 만들어 의롭고 평화로운 정의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천국이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됩니다.”고 가르쳤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평등해야 하며 재물과 지식을 가져도 자기보다 못한 자를 위해 쓰고, 자기만을 위해 가진다면 가지지 못한 자만 못할 것이요 불행을 초래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낮아지고 종이 되면 누구와도 싸우고 재판 하지 않을 것이요 그런 사람은 이 땅의 모든 것을 마음에 소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값을 올리기 위하여 사서 두고, 팔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을 궁하게 하는 자요, 투기하여 일확천금 하는 것보다 적은 것 하나라도 생산하여 한 푼을 얻는 자가 부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기 소유라도 다른 사람이 더 필요하고, 더 많은 것을 생산하여 여러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면 내어주고 다른 일을 찾아라”고 했습니다. 그런대도 많은 사람들이 저만 옳다고 하면서 추종했습니다.
익산시에 송학동 교회와 주현 교회 두 개를 세웠습니다. 천 명이 넘게 모여 들었습니다. 심지어 거지, 전과자, 정신이상되어 옷을 벗고 다니는 자들까지도 모여와서 자기들의 “구세주요 하나님이요 왕”이라고 까지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속담에 “벙어리도 날짜 가는 줄은 안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분들 역시 인간적인 생각과 보는 면은 동등하기 때문에 무엇을 분별하고 아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의롭고 평화로운 정의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천국이 거저오는 것이 아닙니 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됩니다.”고 가르쳤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평등해야 하며 재물과 지식을 가져도 자기보다 못한 자를 위해 쓰고, 자기만을 위해 가진다면 가지지 못한 자만 못할 것이요 불행을 초래 할 수도 있습니다. 내 먼저 양보하고 낮아지고 종이 되면 누구와도 싸우고 재판하지 않을 것이요 그런 사람은 이 땅의 모든 것을 마음에 소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값을 올리기 위하여 사서 두고, 팔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을 궁하게 하는 자요, 투기하여 일확천금 하는 것보다 적은 것 하나라도 생산하여 한 푼을 얻는 자가 부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기 소유라도 다른 사람이 더 필요하고, 더 많은 것을 생산하여 여러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면 내어주고 다른 일을 찾아라”고 했습니다. 그런대도 많은 사람들이 저만 옳다고 하면서 추종했습니다.
익산시에 송학동 교회와 주현 교회 두 개를 세웠습니다. 천명이 넘게 모여 들었습니다. 심지어 거지, 전과자, 정신이상 되어 옷을 벗고 다니는 자들까지도 모여서 자기들의 “구세주요 하나님이요 왕”이라고 까지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속담에 “벙어리도 날짜 가는 줄은 안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분들 역시 인간적인 생각과 보는 면은 동등하기 때문에 무엇을 분별하고 아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종교단체 지도자들은 “이교부는 전과자, 귀신들린 자, 무식한 자들만 좋아한다. 심지어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다, 비방하는 말로 전라도 사람”이라고 까지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권위의식과 위대하다고 느끼는 것이 위축되고 자기들의 교세가 약화되는 것을 면해 보기 위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특별히 서울에서 집회를 많이 하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교계에는 혼란이 올 정도였습니다. 몇몇 교단에서는 “목사든 교인이든 이교부 집회에 참석하면 제명하겠다.”고 까지했으나 그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저의 설교를 듣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며 참석하여 제명당한 목사들이 여러 명 있고 제적당한 신학 대학생들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문제는 저를 비방하는 분들이 아니라 저의 설교를 듣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저를 위주로 하여 교파 하나를 만들어 이 땅에서 크게 하여 과시해야 한다, 서울에 땅을 사준다. 돈을 수천 만 원, 수억 원을 내놓겠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야심이 있었다면 서울에 큰 교회를 지을 수도 있었고 돈을 모을 수도 있었으며 대중을 모을 수도 있는 조건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저의 근본 뜻을 몰랐던 것입니다.
자를 만났다.”고 했으며 심지어 목사들까지도 와서 “참 목자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기성 교회목사들과 맹신으로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고 비방의 대상이 되고 마치 유대교가 예수를 핍박하여 죽이려고 하는 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에게는 기성 종교 지도자들과 제도들이 바로 보이지 않고, 제가 추종하고자 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젊은 나이 33세에 십자가에 죽음을 당했다고 했는데 저 역시 33세에 죽어 제물이 되어 이 땅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목표를 세워 놓고 종교 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광신자가 되었으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로 생각되면 어느 허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힘을 주시는 구나 나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도 감동되어 저로 하여금 이땅에 지상천국을 건설하게 하는구나.”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의 종교생활을 직접 보지 못하신 분들까지도 제가 어느 정도였는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Q. 종교를 벗어낫다고 하셨는데?

A. 그 동안 기독교 성경책과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저의 바라는 나라를 이루어 보려고 했으나 결국 종교인들에게 “이단이다, 교리에 맞지 않는다, 무신론, 공산주의다.”라는 비방과 고소를 당한 것 밖에 없고 저의 바라고 기대한 뜻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시 또 기독교 이름으로 한다면 기성 교인들의 과거보다도 더한 배척이 올 것 밖에 없다고 생각되어 저는 기독교 간판을 떼고 “나는 기독교를 벗어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교리에 맞지 않는다며 이단이라느니, 시기, 분쟁도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목적은 “부자 되고 병 낫고 죽어 천당 간다고 하며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섬기고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당과 지옥, 천사와 마귀, 의인과 죄인 등 상대적인 그런 교리를 가지고는 종교나 국가가 하나로 통일이 될 수 없고 지상 낙원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믿고 누가 해 주는 것 보다는 자기가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말하는 하나님과 천당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하나님, 천당과 다른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하나님은 태초에 조상으로부터 영원히 태어날 인류와 정신, 사상, 이념이라고 하겠으며, 천당은 죽어 간다는 천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정의와 평화, 평등, 만민이 마음 속에서 똑같이 추구하고 원하는 사회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인, 신도라는 말을 부모, 형제자매, 가족이라고 또는 우리라고 부를 것입니다.
모든 종교, 사상, 법을 만들 때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평화통일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기 위함인데 결국은 그 법과 교리에 매어서 맹신이 되어 자유 보다 종이 된 것이며 조금만 다르면 이단시하고 다투고 싸우며 죽이고 원수가 되어 당파만 분열된 것입니다.

 

어느 교리, 사상, 지식이 옳다고 하기 전에 말과 행동이 같으며 정의를 행함으로 모든 사람이 믿고 따르고, 자원함으로 동참하며 동조하게 될 때만이 옳은 진리, 사상이라고 말할 것이요 종교도 국가도 세계도 통일이 되는 일임을 알고 보니 오히려 종교인이라는 것이 저에게는 거치는 것 외에는 큰 유익이 없다고 생각되어, 종교를 가지기 전 처음에 깨끗했던 세계로 돌아가 원하고 바라던 나라, 꿈속에서 나타났던 동심의 세계로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Q. 신의 존재와 꿈, 환상, 계시에 대해 한말씀?

A. 저는 남달리 종교생활을 하되 맹신적으로 믿고 행하였으며 제가 원하고 바라는 뜻을 어떠한 신의 힘을 빌려서 이루어보려고 철야기도, 금식을 해 가면서 하나님 뿐 아니라 마귀까지도 접해 보고 천당과 지옥도 몸소 체험해 보려고 했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 같이도 되어 보려고 한 우매한 탓으로 별별스런 꿈도 꾸고 음성도 듣고 환상도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저만 선택해 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을 자랑삼아 누구에게 말하지는 않고 제 자신 혼자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그 모든 일들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자기 힘만으로는 할 수 없고 미치지 못할 일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것이요 나약한 데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이란 어떠한 일에 부딛쳐도 자기 안에 악한 생각과 욕심이 없다면 그런데 현혹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자기 마음속에서 추구하는 비중을 따라 나올 수 있습니다. 악인에게는 악한 생각대로 점점 유혹되어 악으로 빠져들어 가면서도 어떠한 신의 뜻으로 생각하여 옳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요, 의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또한 그런 면으로 결부하여 신의 뜻으로 생각하며 옳은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계시나 환상, 신비를 체험하는 것은 꼭 종교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과학이나 예술도 어떠한 일에 전념하다 보면 그런 현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분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자기가 하나님이요, 예수요, 미륵이요, 정도령이요, 이 땅에 왕으로 왔다고 주장한다면 너무도 허구성을 들어내는 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다른 사람도 그 보다 더한 계시와 환상과 꿈을 꾼 역사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모이면 자기만 옳고 바른 신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들의 말이 현실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만 맞지 않는 면이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영이라고 변명하고 속이고 속는 것입니다.
문제는 결코 그런 것으로 변론할 것이 없는 것이요, 만민이 보고, 믿고, 공감을 하여 화합하고 따라 올 수 있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서 신의 존재와 계시, 환상, 꿈이란 것으로 논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의 종교생활에서 체험하고 알게 되어 그런 허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여 종교를 탈피하게 된 것입니다.


Q. 본인의 소신과 원하는 나라에 대해 한말씀?

A. 참으로 성현이 되고 어진 자가 되는 것은 종교를 가지고 목욕 재배하고 기도하고 어떠한 성현의 책을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좋은 것 나쁜 것 어떠한 고통과 아픔과 억울함과 모든 것을 체휼해 본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이야말로 도인이요 성현이며, 참으로 모든 것을 겸비한 사람이 되어 인간의 본성을 갖춘 자라고 할 것이요. 재물과 명예와 어떠한 지식이나 학문을 가진 자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체휼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유익하고 평안한 곳을 찾아 가는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궁하고 고생되고 멸시, 천대받기를 좋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한 사람이라도 선도하고 구하고 돕는 일이라면 생명이라도 불사하고 찾아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말보다 행동으로 솔선수범하면 그동안 우리를 이해할 수 없어, 종교인들이나 정부 위정자들이 수용하지 못하여 흩어지게 했으나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박애정신으로 희생하고 살다보면 반드시 알려질 것이요 그때는 우리를 모르고 반대하신 분들도 더 좋아하시고 동조하리라 믿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우리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외국의 어느 나라에서라도 우리들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영접하리라고 믿고 그 일만이 우리의 할 소명이요 과거, 현재, 미래도 동일한 운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의 모친께서 90세에 돌아가셨는데 어느 수의도 입혀드리지 않고 화장하여 묘를 쓰지 않은 것은, 불쌍한 걸인, 자녀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모두 그렇게 장례를 치러 주었는데 저의 부모만 공원묘지에 반달 같이 해 놓으면 “자기 부모는 잘해 놓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했다”고 할 것 아닙니까? 모친 뿐 아니라 이미 선친이 있던 묘도 파서 없애고 그런 땅에 곡식이라도 심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산 사람도 자기 땅이 한 평 없는 자가 많은데 죽은 자를 위하여 묘를 쓰고 비석을 세운다면 낭비요 그것이 선친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고귀하고 숭고한 사상과 덕을 이어 받아 올바르게 살며 이 땅에 평화를 이루는 길만이 영원히 가신 분을 위해 드리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를 따르는 모든 분들과 내가 장례를 치러드리는 사람은 모두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기에 저부터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위정자가 잘하면 아랫사람도 잘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보면 그 나라 지도자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혼란할때마다 당파가 일어나고 각종 종교가 난무해지는 법입니다.
어떠한 이론, 사상이 좋다고 해도 바로하지 않으면 부정이 생기고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이요 악하다고 원수를 갚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잡게 되면 그들 역시도 얼마 가다 보면 더 부패되고 말았고 또 다시 데모하고 민중이 일어나 바로 한다며 정권을 장악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부패하는 반복된 역사나 종교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사상, 교리, 종교보다 누가, 어떠한 사람이 그 법을 집행하느냐가 중요하며 사람의 옳은 마음을 갖고 바로 된 사람이라야 할 것입니다.
쿠데타를 일으키고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찌 정의사회,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미 살인하여 원수가 있는 자입니다.
남을 속이고 노임을 착취하고 부정 축재한 자가 복지사회를 이룰 수 없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궁하게 만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평화, 정의사회, 복지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은 자기들의 과오를 좀 합법화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라도 살인하고 싸우고 미워하지 않은 자, 누구에게도 해를 조금도 끼치지 않고 남의 것을 토색하거나 부정이 없는 자라야만 평화, 정의사회, 복지사회를 이룰 수 있으며 누구도 불만, 불평하지 않고 모두 기뻐하며 서로 자기 몸같이 고락을 나눌 수 있으며 낙원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옳아도 만인이 옳게 보지 않을 때는 유익이 없고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싸운다면 더 못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와 시기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죽고 썩은 고기는 폭풍에 떠내려가면 다시 올라오지 않으나 산 고기는 비록 폭풍에 떠내려갈지라도 폭풍이 그치면 다시 올라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강도가 칼로 총으로 위협하므로, 나의 있는 것을 빼앗기는 자는 무능하고 비겁한 사람이나 그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서 까지 빼앗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주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가져가라고 주고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할 수 있는 자는 빼앗아 가는 자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독교 이름으로 했던지 무신론, 공산주의로 했던지 행한 일과 가르친 일들이 저의 양심으로 한 점의 부끄럼도 없으나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못하는 분들에게 더 이상 물의를 일으키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없는 자와 같이 무능한 자와 같이 우리의 때가 올 때까지 이 땅에 묻혀서 살며 기다렸습니다.
배고픈 자 배부를 것이요, 우는 자가 웃을 것이요, 절름발이가 기뻐 뛸 것이요, 고아와 과부의 억울함이 신원 될 것이요. 숨기고 감추어진 것이 드러날 것이며 옥에 있는 자가 놓이고 종이 자유 함을 얻을 것이며 수고한 자의 값이 돌아올 것이며 의인이 나라를 다스릴 것이니 아무도 불만과 불평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며 새 나라 새 땅이 이루어져 서광의 빛이 떠오르고 많은 사람이 원하고 바라며 찾던 나라가 시작될 때 지상천국, 낙원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동안 제가 원하고 행하며 가르치며 이루겠다고 살아 온 것들이 위에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사이비 이단, 삭발교, 나체교, 공산주의란 말을 듣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보고 있으나 이 모든 것이 풀어지는 날에 우리의 나라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 저의 어려서 꿈에 그리던 나라이며 과거 현재 미래도 이것만이 이교부라는 것을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저를 따르고 아시는 분만 아니라 많은 분들에게 이해를 위하여 말씀드리다 보니 오히려 말씀 드리려고 했던 취지와 멀어진 것 같아 죄송하며 문장도 없고 표현을 바로 못하다 보니 이 글을 쓰지 않은 것만 못하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 글로써 저의 뜻과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것만 같아 아쉬우나 무슨 말과 글이 필요하겠습니까? 오직 여러분들이 우리를 만나 보시고 여러분의 마음에 비추어 질 때만이 올바른 판단과 평가가 되며 가장 진실한 것이 될 것입니다.
부족한 소인의 어리석은 한 인생의 과오가 이처럼 변개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만일 제가 불행한 자라면 다시는 저와 같은 불행을 당하시는 분이 없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조금이라도 관용을 베풀어 주십시오. 여러분 앞에 좋은 이미지로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면서 지극히 적은 단편이나마 말씀드리며 여러분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고 남기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Q. 주현 교부 창립 원인과 동기에 대해 한말씀?

A.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는 무엇이며 사상, 종교, 이념의 중요성과 목적이 무엇인가?
결국 온 인류가 바라고 추구하는 것은 지식이 있고 없고, 돈이 있고 없고, 종교인이나 무종교인을 막론하고 똑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각종 사상, 종교, 학문은 우주를 정복하는데까지 이르렀으나 세상은 분열, 전쟁, 빈부 차이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의 국가, 사상, 종교만이 제일이라고 군림하기 위하여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는 자기만을 위하고 남을 해치는 사람 보다 남을 위하고 돕는 의로운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항상 자기를 드러내기를 바라고 의인은 항상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는 악인이 더 많은 것 같이 보일 따름입니다.
불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오고 빛이 비추면 어둠은 사라지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 세상의 불의를 보고 판단하고 한탄만 하고 있다면 영원히 불의는 남겨지고 의로운 정의 사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도 어떠한 의와 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스만 있다고 음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불을 붙이는 점화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세상을 폭발시킬 화약이 있어도 점화할 뇌관이 없다면 안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 되기를 원하고 있으나 자기가 먼저 정의를 행하기 위해 희생하려고 하는 분이 적고, 있어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면 항상 자기 한 사람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분들이 모이고 하나가 되면 자기도 힘이 나고 보는 이로 공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지극히 적은 분야나마 이 몸을 불살라 뜻이 같은 분들과 더불어 모체가 되고 주체가 되어 구심점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충정된 애국 인사들과 의인들이 모여 신 한국을 창조하고 국민들은 귀가 열려 있고 눈을 뜨고 볼 수 있으니 남을 위하여 은밀하게 살면서도 대접받지 못하고 죄인 취급 받으면서 곳곳마다 흩어져 이름 없이 살던 의로운 백성이여 당당하고 떳떳하게 나오셔서 온 세상이 보고 알 수 있게 15년 중단된 성전을 다시 건축하여 가난하고 병들어 갈 곳 없는 고아, 전과자, 소외된 자들까지도 모여 위로와 치료를 받고 기뻐 즐거워하며 새사람이 되어지는 것을 볼 때 다시는 누구도 와서 발로 차고 때리고 사이비 공산당, 간첩이라고 잡아가며 끌어내어 흩어지게 못할 것이요 하나님과 성현들의 영령, 만물까지도 기뻐하며 도와 줄 것이요 인류는 하나가 되리라고 믿고 때가 되면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합니다.


Q. 주현교부(主賢敎部) 명칭에 대해 한말씀?

A. 주현 교부라고 호칭을 하게 된 동기는 이 땅에 주인과 성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어떠한 국가, 종교, 예수, 석가, 공자, 특권층도 아니고, 잘나고, 못나고, 유식하고, 무식한데,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두가 주인의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 자연, 인류는 하나님이요 조상이라는 뜻입니다.
인류를 경외하지 못하고 곡식 하나, 물 한 방울, 종이 한장까지라도 아끼지 않고 절약하지 못하는 사람은 창조주와 조상님을 모독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에 전쟁과 갈등, 자연이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자기 것을 아끼고 보존하여 귀중히 여기나 종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낭비하고 파괴하고 속이고 충성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질 때만이 이 땅은 존귀하게 될 것이며 하나가 되고 지상천국이 된다는 뜻으로 주현 교부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