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데이 이승일 기자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그동안 묻혀져 있던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중에 강화군 교동에서 '박처원'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됐다.
박처원 전 치안감은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현 북한 남포시)에서 출생하고 어렸을때 지주의 아들로써 숨어서 부모가 인민군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월남하여 1947년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서, 제5공화국 내내 말단 순경에서 치안감까지 올랐던 오로지 '대공업무'만을 담당했던 박처원 전 치안감은 김일성에게는 가장 제거해야할 1순위 대상자였다.
특기할만한 것은 40여년간 경찰생활을 해오면서 오로지 대공업무만 담당하며 치안감 자리까지 오른 박처원 전 치안감은 통상 경찰서장을 맡게되는 경정-총경시절이나, 지방시도경국장(현재의 지방경찰청장)을 맡는 경무관 계급에서도 일선 지휘보직은 일절 맡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김일성집단은 부모를 무참하게 죽인 원흉인셈이다.
5공화국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총괄했던 박처원 전 치안감은 임기 동안 1981년 학림 사건, 1985년 서울대 민추위 사건 등 공안사건 처리를 지휘했으며, 이 과정에서 당시 남영동의 위상은 남산 국가안전기획부, 서빙고 국군보안사령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며 이러한 수사 처리능력을 높이 산 정부는 박 치안감에게 1980년 녹조근정훈장, 1981년 홍조근정훈장 등을 수여했다.
1988년 퇴직 후 1993년까지 '현대비교문화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기도 했으며, 그는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졌고, 그 상태로 2008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