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오래된 한옥을 보러 갔다가 민영휘 묘역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묘 아래에는 지금 ‘춘천 민성기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유산이 된 집이 있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휘의 묘역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된 묘막이었다.
그날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먼발치에서 그들이 오자 묘막에서 누군가가 달려나와 그들을 안내하고, 그들이 민영휘 묘소에 참배하는 모습을 보았다. 뒤이어 묘에 올라가 인사를 나누고,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자 휘문고 이사장과 묘의 손자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때 속이 부글거리는 마음은 뒤로하고, 휘문고가 대학입시율이 좋아, 강남엄마들이 추첨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전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이 무슨 연유로 민영휘묘를 찾아 왔다는 말인가? 민영휘묘. 묘막. 휘문.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역사교과서.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일제는 1945년 떠났다. 그러나 식민지배를 위해 만들어 놓은 역사인식과 교육의 영향까지 그날 함께 떠났는가. 민영휘묘 아래 민영휘 묘막이 문화유산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보존되고 있다니...
나라를 잃은 역사 앞에서 분노와 부끄러움조차 없다면
친일·식민잔재청산은 죽은 사람을 다시 욕하기 위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왜 나라를 잃었는지, 무엇 때문에 수많은 독립투사가 목숨을 바쳤는지, 그리고 왜 어렵게 맞은 광복과 함께 분단이라는 또 다른 비극을 맞았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다.
그 역사 앞에서 분노할 일에 분노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할 일에 부끄러워하지 못한다면 같은 잘못이 반복될 때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
분노와 부끄러움의 마지막은 국가의 결단이어야 한다.
사람은 죽어도 재산은 남는다. 학교와 재단은 남는다. 학설과 학맥은 이어진다. 교과서는 다음 세대의 기억이 된다.
그래서 이제 물어야 한다.
친일과 식민지배가 남긴 재산·교육·학문·제도와 역사인식 가운데 무엇을 청산했고, 무엇을 아직 청산하지 못했는가.
성삼제가 일본 교과서를 보다가 우리 교과서를 다시 펼친 이유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당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대응 업무를 맡았던 성삼제 선생은 일본 교과서를 들여다보다가 오히려 우리의 교과서를 다시 펼쳐보게 됐다고 했다.
그 문제의식은 훗날 《고조선, 사라진 역사》로 이어졌다. 핵심은 간단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노하는 것만으로 우리 역사를 지킬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연구하고 검증해야 한다. 남의 왜곡에는 분노하면서 우리 교과서가 무엇을 가르치는지는 묻지 않는다면 역사주권은 세울 수 없다.
그래서 조선총독부와 조선사편수회의 역사서를 가져오자. 해방 이후의 모든 교과서를 가져오자. 국사편찬위원회의 편찬자료와 박물관의 시대별 전시자료도 가져오자. 고조선과 단군, 한사군과 낙랑군, 임나일본부,우리 고대사의 강역이 어떻게 서술되어 왔는지 비교하자. 그리고 춘천 중도를 비롯해 새롭게 발굴된 고고학 자료까지 함께 올려놓자.문장 대 문장. 지도 대 지도. 사료 대 사료. 학설 대 유물.무엇이 끊겼고 무엇이 실제로 이어졌는지 국가가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광복 80년이 지난 오늘도 이상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2025년에는 리박스쿨 관련 강사들이 초등학교 늘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 교육부가 조사에 나섰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아이들 앞에 서는 사람은 누가 검증하는가.
어린 시절 각인된 역사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교육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국가기관에서도 문제가 반복됐다.
윤석열 정부 시기 국방부 장병교육 교재에서는 독도가 영토분쟁 지역인 것처럼 기술됐다는 논란이 일었고, 지도에서 독도가 빠진 사실도 드러났다. 행정안전부와 외교부 자료에서도 독도 표기 문제가 잇따랐다. 한 번의 실수라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여러 국가기관에서 같은 종류의 문제가 반복됐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이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조차 왜 반복해서 문제가 되었는가.
독도는 지도 위의 작은 점 하나가 아니다. 나라를 빼앗겨 본 국민에게 영토는 주권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언어가 아이들의 운동장까지 내려왔다
2026년 청룡기 고교야구 경기에서는 배재고 일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등의 구호를 외쳐 논란이 일었다. 이 일을 ‘철없는 학생 몇 명의 장난’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평생 낙인찍자는 것도 아니다.
잘못한 학생에게는 왜 잘못했는지 제대로 가르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게 해야 한다.
책임 없는 교육은 또 다른 혐오를 만든다. 그러나 아이들만 벌주고 어른들이 빠져나가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말과 행동을 보고 배웠다면 어른들은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왜 국가폭력의 아픈 기억이 아이들의 장난이 되었는가. 왜 한 지역의 상처가 응원구호가 되었는가.
학교는 역사적 사실과 피해자의 고통을 어떻게 가르쳐 왔는가. 정치와 언론,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은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보여주고 있는가. 아이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라면 어른에게는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국회에서까지
2026년 8월에는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한다는 공개포럼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1980년 광주를 ‘소요 사태’라고 부르는 발언까지 나왔다.
학문적 질문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대사의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을 다룬다면 그만큼 엄격한 사료와 사실검증이 따라야 한다.‘
학문의 자유’라는 말이 사실검증을 면제해 주는 허가증은 아니다.
리박스쿨, 독도 표기 오류, 배재고 사태, 5·18 토론회. 이 사건들이 하나의 조직이나 하나의 원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곳에서 반복되는 장면들은 하나의 질문 던진다.
대한민국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역사와 어떤 국가정체성을 가르칠 것인가. 이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주권국가의 기본 문제다.
사료보다 학맥이 높을 수 없다
그래서 역사학계도 예외일 수 없다.
특정 학맥이나 연구집단이 장기간 국가기관의 인사와 연구비, 교과서 집필, 학술지 심사, 박물관 전시와 국가위원회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새로운 사료와 고고학적 증거가 나왔는데도 기존 학설과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한 일은 없는가. 다른 견해를 ‘유사역사학’이나 ‘사이비’라는 이름부터 붙여 정상적인 검증의 장에서 배제한 일은 없는가. 국가 연구비와 주요 역사기관의 자리가 특정 학맥에 편중되지는 않았는가.
자료를 공개하면 된다. 사료보다 학설이 위에 있을 수 없다. 유물보다 학맥이 높을 수 없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학문적 권한이 누구의 기득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춘천 중도의 유물이 기존 학설과 맞으면 기존 학설을 강화하면 된다. 다르면 고치면 된다. 땅은 어느 학파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유물에는 좌우가 없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사람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교수 한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다.
교사 한 사람은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국가 역사기관의 연구자는 교과서와 박물관, 국가정책을 통해 수백만 국민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인적 쇄신은 중요하다. 출신이나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내보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사료의 고의적 왜곡·배제, 연구윤리 위반, 공공연구비와 인사의 부당한 독점, 이해충돌, 다른 연구자의 정상적인 검증기회 방해가 확인된다면 그 사람에게 계속 국가의 역사교육·연구·정책을 맡길 이유는 없다.
잘못한 학생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교사와 교수, 언론인과 정치인, 공직자와 국가기관 책임자에게는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책임을 가르칠 수 있다.
민영휘가 남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래서 다시 민영휘 묘역으로 돌아온다.
민영휘는 휘문의숙을 세웠고 그 역사는 오늘의 휘문고로 이어졌다.
풍문고 공식 연혁에는 1937년 ‘경성휘문소학교’ 개교가 기록돼 있다.
특정 후손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역사를 오늘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민영휘가 학교를 세운 사실을 가르친다면 그의 친일반민족행위도 함께 가르치자.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그리고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에 나섰던 역사도 함께 가르치자. 명문학교라면 설립자의 자랑뿐 아니라 불편한 역사까지 정직하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광복 80년이 넘었다.
한 번 분노하고 잊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다시 놀라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 직속 역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 ‘살아있는 친일·식민잔재청산위원회’를 두자. 보여주기식 위원회여서는 안 된다. 조선총독부·조선사편수회에서 오늘까지의 역사서술과 교과서를 전수 비교하자.
국가 역사기관의 인사와 연구비를 공개하자.
교과서 집필진과 박물관 전시위원의 선정과정을 투명하게 하자.
친일재산과 학교법인의 형성과정도 조사하자.
독립투사와 의병의 미발굴 자료를 찾아내자.
학계의 폐쇄적 학맥과 부당한 인사·연구비 독점이 확인되면 깨뜨리자.
책임져야 할 자리는 인적 쇄신을 하자.
불법에는 책임을 묻고, 법적으로 환수해야 할 친일재산은 끝까지 추적하자.
잘못된 교과서는 고치고, 박물관 전시는 새로운 사료와 발굴성과에 따라 바로잡자.
신속하게. 철저하게. 끝까지.
그러나 반드시 사료와 증거와 법에 따라.
역사교육의 목표는 ‘외우는 국민’이 아니라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국민’이다
나라를 잃었던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다시 나라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쟁을 배우는 것은 다시 전쟁하지 않기 위해서다.
분단을 배우는 것은 적대와 분열을 넘어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독재와 쿠데타를 배우는 것은 다시는 헌정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5·18을 배우는 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친일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죽은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와 공동체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다음 세대가 판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역사교육은 지식교육이면서 시민교육이어야 한다.
사실을 가르치고,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게 하고, 잘못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잘못된 역사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잘못된 역사를 다시 물려줄 필요는 없다는 것. 우리 세대에서 고칠 수 있다.
광복 80년, 우리는 역사까지 광복했는가
민영휘 묘역에서 우연히 만난 한 사람으로 시작된 질문은 결국 대한민국 전체를 향한다.
2001년 성삼제는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응하다 우리의 교과서를 다시 펼쳐보았다.
20여 년 뒤 우리는 국가기관의 독도 표기 오류를 보았다.
초등학교에서는 리박스쿨 관련 강사 논란이 벌어졌다.
고교야구장에서는 5·18을 연상시키는 조롱성 구호가 터져 나왔다.
국회에서는 5·18을 ‘소요’라고 부르는 발언이 다시 등장했다.
이제는 한 번씩 분노하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왜 반복되는지 국가가 물어야 한다.
나라를 잃은 역사 앞에서는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 앞에서는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분노와 부끄러움의 마지막은 또 다른 분노가 아니다.
국가의 결단이다.
밝힐 것은 끝까지 밝히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게 하고, 바꿀 사람은 바꾸고, 고칠 제도는 고치고, 되찾아야 할 역사와 재산은 법과 증거에 따라 되찾자. 학생이 잘못하면 제대로 가르치자. 어른이 잘못하면 더 무겁게 책임지게 하자.
교사가 잘못하면 교육을 바로잡고, 교수가 잘못하면 학문의 책임을 묻고, 공직자가 잘못하면 자리를 바꾸고, 국가기관이 잘못하면 기관을 개혁하자.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통합이 아니다. 잘못을 바로잡고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통합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과거에 갇힌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 역사와 정신과 철학에 뿌리를 두고 세계와 당당하게 만나는 대한민국이다. 우리 역사를 우리 자료로 연구하고, 아이들이 자기 역사에 자긍심과 비판정신을 함께 갖게 하며, 다른 민족의 역사도 존중하면서,외세의 침략과 역사왜곡 앞에서는 단호한 나라. 그런 국민이라야 나라를 다시 빼앗기지 않는다. 그런 국민이라야 분열과 혐오를 이용하는 선동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과거청산이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주권의 재건이다.
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이제 국가에 묻는다.
우리는 역사까지 광복했는가
아직 미완이라면 지금 시작하자.
이번에는 끝까지 하자.다시는 나라를 잃지 않도록.
다시는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다시는 역사와 지역의 상처가 아이들의 장난거리가 되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미완의 청산을 다시 물려주지 않도록.
그것이 독립투사들이 목숨으로 지키려 했던 나라를
오늘 우리가 완성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