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투데이 이승일 기자 | 독립기념관(관장 김희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국학연구원 역사와공간연구소와 함께 5월 29일 연세대학교 위당관 6층 문과대학 백주년기념홀에서 “1926년 6월, 다시 거리에 서다”라는 대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오늘의 행사가 일제강점기 연희전문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역사를 이은 연세대학교에서 개최된다는 점이 뜻깊다.
1926년 고려공산청년회와 천도교 구파 중심으로 준비하던 운동이 좌절된 이후, 6월 10일 만세시위를 이끈 것은 학생들의 몫이었다. 그 중에서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들은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6월 10일 거리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번 심포지엄은 6·10만세운동 100년을 기념하여 2025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단기기획연구과제로 진행된 성과물의 발표다. 6·10만세운동의 연구사를 정리하고, 운동을 주도했던 학생층의 1920년대 문화를 살피고, 운동 직후 6·10만세운동에 대한 기억 투쟁을 분석하며, 주도인물 중 한 사람인 박래원의 회고담을 재검토해볼 것이다. 이상의 발표는 6·10만세운동에 대한 이해를 새로이 할 것이다.
심포지엄은 총 4주제의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임동현(독립기념관 연구위원, “해방 후 6·10만세운동의 역사인식 변화 과정”)은 해방 직후, 4·19혁명 이후, 6월 항쟁 이후 등 주요 시기별로 한국 사회의 6·10만세운동에 대한 인식 변화를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은 한국독립운동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과정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이기훈(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1920년대 학생층의 성장과 6·10만세운동”)은 1920년대 학생 수가 증가하면서 일어난 새로운 학생문화의 확산과 학생들의 집단적 자의식 형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양상이 1920년대 후반 사회주의 확산과 함께 결합되어 학생들이 식민지 저항 주체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김영진(성균관대학교, “‘6월 운동’에 관한 두 개의 시선”)은 6·10만세운동이라는 대신에 ‘6월 운동’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제안한다. 운동 직후에 일제 식민 검경의 수사 과정에서 운동은 분리된 주체의 개별적 사건으로 인식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운동 당사자 중심으로 ‘민족협동전선’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본 연구는 ‘ 6월 운동’을 둘러싼 당대의 해석 문제를 다시 살피면서 운동 당사자 인식을 계승하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최우석(독립기념관 연구위원, “6·10만세운동과 박래원”)은 천도교 교주 박인호의 조카로 6·10만세운동 준비를 주도했던 박래원의 회고담을 재검토하는 것을 토대로, 박래원 중심의 6·10만세운동 준비과정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주제 발표와 함께 김홍준(연세대학교), 정병욱(고려대학교), 조형열(동아대학교), 홍종욱(서울대학교) 등 학계 전문가의 토론이 이어지며, 행사 막바지에 춘천교육학교 김정인 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